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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 공터에서 바라본 북한산. 오봉 풍경, 155m봉의 그네가 이색적이다-
심리산.매조산.대자산.금표비<內子7주기>아이들과 순댓국에 맥주!
제2269024038호 2024-07-14(일)
◆자리한 곳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나온 길 : 관산성당-심리산-155봉-대자천-미타원-매조산-대자산-중부대입구-금표비-고골마을
◆거리및시간: 3시간36분(09:18~12:54) ※ 도상거리 :약13.4km <보행수(步行數) :17,953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비교적 맑음 <'해 뜸 05:22 해 짐 19:54' '최저 24도, 최고 31도’>
이제 겨우 70세인 집식구, 7주기 기일(忌日)이 이틀 앞이다.
주말(13일) 초등동창모임에서 오랜만에 소꿉친구들을 만나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분우기 때문에 과음으로 몸이 힘들다. 두세 번 일어났다 눕기를 반복하다 생각하니, 한가하게 여유부릴 때가 아니므로 독하게 마음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미지근한 물 샤워로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모래 16일(화)이 집식구를 떠나보낸 7주기라 납골당에 다녀와야 한다. 한나절씩을 투자해 달랑 납골당만은 비효율적이니 등산을 겸하기로 한다. 지도를 펼치고 등고선에 코스(두포동.관산동성당-심리산-대자천-미타원-매조산-대자산-장령산-옥녀봉-철마산-산새울마을까지 약15km)를 그려 A4용지에 지도를 프린트한다. 아점으로 해결하던 평소와 다르게 조반부터 챙겨먹고, 배낭을 꾸려 현관문을 나선다. 지하철 6호선으로 불광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 삼송리역 8번출구로 하차 마을버스(88번)로 환승 자리에 앉았다. 내일(15일)은 제수(祭需)장만하는 날이므로(출가한 딸아이를 대동하고 제례시장과 마트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발품) 팔아야하고, 모래(16일)는 제사에 필요한 축문 쓰고, 영정사진, 병풍과, 제기를 손질하고 모사그릇과 퇴주그릇 준비하기로 마음속에서 순서를 정한다.
-메타세콰이어 숲이 들머리, 심리산 정상, 용화사 갈림길-
심리산 : 경기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산 84의 높이 143m의 관산마을 뒷산이다.
정산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철조망으로 통행이 불가하나 산을 찾는 주민들을 배려로 MTB 라이딩과 등산엔 불편이 없으며 조선 왕족들의 묘지와 경은부원군 김주신묘와 조선국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의 묘지가 자리한 곳이다. 1949년 이경용이 창건, 작은 법당과 요사채로 근근이 명하다, 승려 김일용이 욕심을 부려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 IMF 사태로 인해 전 재산을 잃고, 야심한 밤에 암자에 방화하고, 자신은 인근나무에 목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자는 전소됐으나, 때마침 소나기가 내려서 산불로 번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흔적 없이 타버린 신월사(암자) 폐사지(廢寺址)엔 잡초목이 무성해 반세기 가까운 시간(1949년~1998년)의 사찰이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게 되었다 한다.
-마타원을 보듬은 높이 159.3m 매조산 정상-
매조산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54에 자리한 동네 뒷산 높이 159.3m의 산이다.
야트막한 육산에 뚜렷한 산길로 걷기 좋은 산이나 도심과는 거리가 있어 높이에 비해 비교적 산새가 깊다고 느껴지며 어깨에 해인사미타원이 자리한 곳이다. 2018년 4월 8일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헬기 2대와 인력 50여명을 투입해 진화했던 산이다.
-최영장군 묘지 가는 길목 대자산 능선에서 만난 풍경-
대자산(大慈山)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과 고양동 경계에 자리한 높이 200.8m 산이다.
대자라는 명칭은 조선조 세종대왕이 현재의 대자동에서 대자사라는 사찰을 준공하고, 마을 이름을 대자라고 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자산의 북쪽은 파주시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통일로변 공릉천에 닿는다. 산기슭에는 최영 장군의 묘와 성녕대군, 경안군, 임창군 묘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바위가 적고 숲이 발달되어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이나 문화유산 답사 코스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해인사 미타원 납골당, 비어 있는 내자리는 사진이 차지했다-
내자(內子) 추억하며 미타원 주변, 고도 200m 내외의 3개산행
두포동.관산동성당 정류장에서 가볍게 산행복장을 꾸리고, 두포마을 관산동성당 앞길을 따르다. 갈림길에서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왔다갔다. 10여분을 허비하고서야 메타세콰이어 사이의 등산로가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 지도등고선에 부지런히 붉은 펜으로 선을 그렸던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배낭 옆구리 그물망 주머니에 넣었다. 김홍집선생 묘지를 지나, 굵은 나뭇가지에 튼튼하게 매달린 그네가 이색적인 155m봉에 올라선다. 등산로 따라 무민로(동서기획)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도로와 대자천을 가로지른 교량을 넘어서, 연화납골당, 대자동회전교차로 경유, 가파른 오르막 포장길을 올라서 해인사미타원 불이문(不二門)에 들어선다. 집식구가 63세에 영면(永眠)해 올해가 70세이므로 7년째 안식(安息)중이며, 모래(16일)가 일곱 번째 기일(忌日)날이다. 함께했던 시간들의 그리움을 추억한다.
-호랑이 무늬견공의 극성을 피해서 동헌로에 내려선다.-
어디에다 빠트렸는지 사라진 지도 때문에 난감하다.
미타원을 뒤로하며 코스를 그렸던 지도를 찾았는데 어디에서 빠트렸는지 흔적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밋밋한 매조산정상을 경유해 대양로(대자동회전교차로-고양향교) 휘파람재에 내려서, 송전탑(NO40)과 2번째 송전탑“국가지점번호 다(Da) 사(Sa) 4611 6667”을 지나서, 사용을 중지한 초소(2층)에 올라선 공터에서, 흐릿하게 조망된 북한산과 오봉풍광이 환상적이다. 최영장군묘지 갈림길 지나,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6~7명의 하이킹무리와 교행하자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 대자산정상이다. 사람의 족적을 찾아보기 힘든 잡초목지대 사이의 묘지를 오가다 농막으로 탈출했다. 호랑이 무늬견공이 목줄에 묽어있는데도 어찌나 앙칼지게 으르렁거리며 덤벼드는지 공포감이 느껴졌다. 동헌로에서 더위에 지친 육신이 물을 요구해 '중부대입구정류장'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쉼하며 물 마신다. 스마트폰을 열어서 다음지도를 검색하는데 딸아이의 전화벨이 요란하다.
계획수정 단축산행, 연산군 시대 금표비 이야기
아이들(아들. 딸. 사위)이 엄마 뵈려 미타원에 왔다는 내용이다. 아빤 어디며, 멀지 않으면 모시러오겠다는 구원의 손길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번거롭게 찾아오지 말고 불광역 순댓국집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아빠마음을 전한다. 장령산-옥녀봉-철마산-산새울마을까지의 산행 계획은 다음으로 미룬 대신에, 일정에 없던 1.5km(연산군시대 금표비를 돌아보아 보기로 한다.) 어느 나라 역사에도 가정이란 없다지만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안타깝다 땡볕이 따가워 발걸음을 재촉, 성황당고개 넘어 고골마을입구에 이르자 버스종점에서 출발대기중인 25번 마을버스가 기다려 서둘러 승차한다.(12:54)
-예정에 없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찾은 연산군시대 금표비-
연산군 시대 금표비(燕山君 時代 禁標碑)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 조선시대 석비. 1995년 8월 7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다.
대자동 간촌(間村) 마을에 있는 금천군(錦川君)의 묘 입구에 자리하며 높이 147㎝, 가로 55㎝, 두께 23㎝이다.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재위 1494∼1506)이 자신의 유흥지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석비는 금천군 이변의 묘역을 보수할 때 출토되었는데, 상단과 하단의 왼쪽 일부가 떨어져 있으며,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서 황토빛이 뚜렷이 남아 있다.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處斬)'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금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왕명을 어긴 것으로 보아 처벌한다는 내용의 비문이다. 1504년(연산군 10) 고양군이 왕의 유흥지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다시 고양군으로 복귀되었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 금표비는 연산군 때 유흥지를 만들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표 구역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파주시·양주시·포천시·남양주시·광주시·구리시·김포시 등이었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는 1504∼1506년에 이르는 금표의 내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한국전통무예 본부도장 '비룡정사' -
아이들과 순댓국에 맥주잔을 나누며 오랜만에 행복감을 만끽한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전화통화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삼송리역에서 지하철(3호선)로 환승, 불광역에서 하차해, 아이들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자리에 합석한다. 서민들의 대표음식 순댓국에 내가 평소에도 한결같이 즐겨 마시는 술은 소주가 분명하나, 가족(아들, 딸아이내외)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병맥주를 주문했다. 거품이 잔에 넘쳐나도록 채운 유리컵을 부딪치니, 오랜만에 아이들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다. 평소완 다르게 세대차이(世代差異)가 전혀 느껴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 집식구의 온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순간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진정한 사랑은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이고, 소중한 사랑은 영원히 간직하고픈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란 글귀가 떠올라 더욱 값진 행복감을 만끽한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4-07-16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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