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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양역 광장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정상가는 길목의 잣나무 숲-
홍복산<의정부-양주 경계의 산, 서울로 치면 남산 같은 역할>
제2275024044호 2024-08-15(목)
◆자리한 곳 : 경기 의정부, 양주시.
◆지나온 길 : 녹양역-버들개마을-5번송전탑-헬기장-정상철조망-철계단-홍복저수지-경민대학교-흥선역
◆거리및시간: 5시간15분(10:41~15:56) ※ 도상거리 :약13.9km<걸음 수(步行數) :20,795보> 알바포함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비교적 맑음(소나기 지나감)<‘해 뜸 05:48 해 짐 19:24’ ‘최저 27도, 최고 34도’>
고통의 크기만큼 짜릿한 행복감에 때문에 광복절에도 산을 찾았다.
입추와 삼복이 지났는데도 꿈쩍 않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울 한낮 최고기온이 34도를 웃돌고, 체감 더위는 더욱 높아 가마솥더위가 살인적이다. 해수욕장이나 계곡의 나무그늘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날씨에 산행이 가당치나 하겠는가? 아무리 좋아서 자청한 일이라지만 산행은 힘들고 고달픈 고통임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땀에 찌들어 망가지고 지친 육신의 몰골과는 다르게 마음만은 정말로 편안하고 가볍다.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한곳에 쏟아 붓는 괴로움이, 목표점에 이르렀을 때의 달콤한 꿀의 순간이다. 호랑이가 간식꺼리에 불과한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에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모든 근육을 총동원 있는 힘을 다하듯, 산행 목적지를 향해 자신이 가진 마지막 힘까지 쏟아낸 후의 뻐근함 뒤에 찾아온 자기만족감! 밥벌이의 수단이었던 32년간의 직장생활에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라니 하게도 힘든 산행에선 다반사로, 치른 고통의 크기만큼 얻어지는 짜릿한 행복감에서 헤어날 수 없으니 광복절에도 아이들의 말류를 뿌리치고 산행에 나선다.
-역사는 번쩍번쩍한데 한산하다, 빙상경기장 회전 교차로 풍경-
광복절(光復節) :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제79주년 광복절이 두 쪽으로 쪼개진 초유의 기념식이 벌어졌다.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정부 측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 측은 효창공원에서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각각 열렸다. 경축식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국가 주요 인사, 주한외교단, 사회 각계 대표, 시민, 학생 등 각계각층의 국민 20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독립운동가 유족, 관련 기념사업회 및 단체 회원 등 약 350여 명을 비롯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김선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등 야권 인사 약 100명이 참석했다. 광복회는 역사관 논란이 불거진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경축식 행사에 불참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김 관장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면서 이번 경축식에 불참을 선언했다. -신문기사 편집-
-홍복산 정상가는 길목은 거미줄과 잡목, 위험물들로 성가시다-
홍복산(洪福山) :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의 경계한 높이 463.3m 산이다.
여러 설화가 전해 오고 있다. 먼저 서울의 주산이 되어 백성들의 복을 누리게 하는 산이라는 데서 홍복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 종루(鐘樓)처럼 생겨서 온 겨레를 깨우치는 산이라는 이야기나 부처 모양으로 생겨서 산이 보이는 지역에서 문장가나 명필가가 많이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남양 홍씨의 선조들이 서울에서 낙향할 때 산마루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남면 상수리가 적지라고 판단되어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자손이 번성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서 가문이 영화로워지자 홍씨가 번성하게 된 산이라 하여 홍복산(洪福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수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전국을 순행하면서 감악산을 거쳐 상수리를 둘러보고 홍복산을 넘어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홍복산에서 뒤를 돌아보며 상수리를 향해 “이것은 과인의 홍복이로다.”라고 말한 데서 홍복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15세기 중반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처음 등장하는데 1448년(세종 30) 12월 10일 기록에 홍복산(洪福山)을 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강무장(講武場)으로 삼을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성종(成宗)과 연산군(燕山君) 시대에도 강무장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러나 1486년(성종 17) 10월 2일 기록부터 홍복산(弘福山)으로 되어 있어 변화가 감지된다. 홍복산이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신편조선지지(新編朝鮮地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도 실려 있다. 홍복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있으므로 정상은 막혀있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홍복저수지로 탈출하며 만났던 풍경-
홍복저수지(洪福貯水池)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2리(福池二里)에 있는 인공 저수지이다.
홍복고개 인근의 움푹 팬 낮은 땅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저수지로, 의정부시 가능동(佳陵洞)에 있는 가능정수장의 취수원이다. 백석천(白石川)의 상류를 막아 만들었으며, 유역면적 3.93km², 총저수용량 1,090,000톤이다. 1996년 확장 준공 되었다.
미 2사단 :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 일대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 부산항을 통해 참전하면서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1954년 미국 본토로 재배치됐다가, 1965년 북한군이 휴전선에 병력을 집결하고 무력시위를 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자 그해 7월에 다시 한국의 휴전선 최전방에 투입되었다. 2003년 주한미군의 재편ㆍ감축 합의에 따라 1단계로 2006년까지 동두천ㆍ문산 등의 기지들을 의정부 기지로 옮겨 통합하고, 2단계로 한강 이북의 미 2사단 주력부대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했다.
-경민대학교의 태극기에서 광복절 분위기를 느낀다.-
경민대학교(慶旼大學校) : 학교법인 경민 학원에서 전문대학으로 1991년 11월 설립인가를 받았고, 1992년 3월, 6개 학과에 신입생 640명으로 개교하였다. 1992년 3월 건축설비과·소방안전관리과, 1993년 9월 전산정보처리과, 1994년 9월 만화예술과를 신설하였다. 1995년 10월 건광관리과·유아교육과, 1997년 11월 이동통신과·부동산과·연극영화과, 1999년 11월 멀티미디어과·소프트웨어과를 신설, 1998년 경민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2006년 복지행정과, 2009년 경찰행정과·효충사관과·아동미술과를 신설하였다. 2003년 경민기념관, 2007년 12월 혜촌기념관·경민역사관을 건립하였다. 2012년 2월에 경민대학이 경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피해, 흥선역에 도착했다-
흥선역(興宣驛) :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 있는 의정부 경전철역이다.
흥선군의 이름이 붙은 역사명이 생뚱맞고 특이해 호기심이 발동한다. 구한말 구미 열강들의 식민주의적 침략에서 누란(累卵)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극복했으나, 쇄국강화로 조선왕조의 개방을 지연시켜 근대화의 길을 막았던 흥선대원군이, 며느리(명성황후)의 세력에 밀려 정계에서 쫓겨나 한동안 직곡산장<양주목 곧은 골(直谷;현 의정부 가능동>에 칩거한 곳으로 송림이 울창하고 옥수같이 맑고 깨끗한 백석천(白石川)이 흘러 경치가 아름다웠다 한다. 서기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산장에 대원군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오는 향나무가 있었으나, 도심의 확장으로 지금은 산장도 향나무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지명은 아직 살아있어 흥선로, 흥선지하도, 흥선로타리, 경전철역 흥선역(興宣驛)이라 명명되었다.
-버들개마을 경로당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던 산책객-
홍복산(의정부와 양주시에 걸친 주민들의 친근한 산행) 스케치
더위 때문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 숨이 멈출 것 같은 위협 때문에 솔직히 두렵다. 그래도 배낭을 꾸려 산행에 나서는 까닭은 산에서 죽고 말겠다는 자포자기가 아니라, 출발하기는 쉽지않으나 산행에 몰입 하다보면 더위를 잊게되고며, 나도 모르게 엔도르핀 촉진으로 행복해지는 마음 때문이다. 도심의 야트막한 산이니 번거로움을 피해, 변변한 지도 없이 나침반만으로 나선 산에서, 길을 잃었으나 험준하거나 첩첩산중이 아니라 만만디 작전으로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세밀한 지도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독도했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부실하나 머릿속에 저장해둔 지도에 기대어 감각을 총동원, 체험하고 터득한 기억으로 나만의 지도(녹양역1번 출구-빙상장앞회전교차로-버들개경로당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발품팔고 돌아 나온 길목에서 달랑 물병하나 들고 산책중인 주민을 만났다. 마을길 따라 곤도예(음식집)앞 소풍길안내도에서 소풍길따라 5분쯤 진행하다 만난 안내판(←입석마을 1.57km, ↑홍복산 정상)에서 망설임없이 곧장 정상으로 향한다. 잡목지대로 거미줄 투성이라 스틱으로 걷어내며 송전탑(N05)을 경유 시원한 잣나무 숲에 이른다. 능선에 올라서 양호한 등산로와 낡아 빛바랜 리본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헬기장을 넘어서 경고문(지뢰매설지) 접근금지-군부대철조망-지뢰위험지대-우회로를 위태롭게 탈출했는데 느낌상으로 선주고개 방향이다. 방향수정 정상으로 향하는 흔적을 따랐는데 철조망이 가로막았다. 얼마 뒤엔 흔적이 없어지고 뜸금없는 생뚱맞게 절개지용 철계단이 나타났다. 의도적으로 등산로에서 이탈, 안전한 탈출에만 신경쓰다보니 촬영에 소홀해 사진이 거의 없어 아쉽다. 홍복저수지 상부 어느 농막으로 탈출, 저수지도로 따라 걷다가 등산로와 만났다. 이미 어긋났는데 등산로고집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으로 도로 따라-입석마을-미2사단울타리-의정부종합운동장-의정부지원-의정부고등학교-경민대학교-흥선역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어느 처마 밑에서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흥선역(의정부 경전철)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4-08-18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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