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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안부 바위에 서 있는 정상석, 구룡산 정상 조망명소-
'올빼미'는 새벽시간이 힘들어 <구룡산,대모산,범바위산,인릉산>
제2326025014호 2024-02-14(금)
◆자리한 곳 : 서울 서초, 강남구. 경기 성남 수정구,
◆지나온 길 : 매헌기념관-여의천-염통골-국수봉-구룡산-대모산-헌릉IC-세곡터널상부-범바위산-인릉산-옛골-청계산로-청계산입구역
◆거리및시간: 6시간32분(10:07~16:39) ※ 도상거리 : 약18.2km <걸음 수(步行數) : 29,301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대체로 맑음 <‘해 뜸 07:23, ’해 짐18:10’ ‘최저 0도, 최고 10도’>
스스로 자처한 고행 셋째 날, 머리가 맑아지길 기대해 본다.
살아온 지난날 최선을 다하지 않아 현재가 불만스럽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고행을 자처(“3일 연속 체벌 산행 셋째 날)” 이므로 기대감으로 마무리에 나선다. 지도를 챙겨 들머리 하지만 치유는커녕 머릿속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하다. 계절의 섭리에 어긋나도록 매우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다. 해발 200m 이하 능선에선 거의 눈이 없다. 고도가 높아지면 잔설이 녹아내려 질퍽거리고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했다. 어느 날 새벽 5시(나에겐 한 밤중)에 집 전화벨이 끈질기게 울려댔다. 비몽사몽 수화기를 들고 짜증 섞인 음성으로 여보세요. 다짜고짜 응 난데! 아버지가 지금 숨을 쉬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119로 연락해서 응급실로 모시고 다시 연락하라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침형 인간’의 삶이 여러모로 좋다고는 한다. 그렇다고 정답은 아니면 ‘저녁(올빼미)형 인간’과 공존하는 유형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나는 새벽시간 활용은 매우 부담스럽고, 아침시간까지도 자유롭지 못하다. 늘어지게 늦잠자고 일어나야 몸이 개운하다. 따라서 집안일이 끝나는 늦은 밤 시간에 명상으로 일과를 정리한 다음, 서툴지만 산행기록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부터 정한다. 진지한 사색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찾는다. 그리고 숨어 있는 긍정에너지를 불러내, 글쓰기에 몰두하거나, 독서나, TV시청, 등으로 방전된 지식창고를 재충전하고, 2시가 지나면 잠자리엔 든다.
-구룡산 능선의 기암, 조망 명소 국수봉, 정상 테크 풍경-
구룡산(九龍山) : 서울시 서초구와 강남구에 위치한 표고 306m의 산이다.
국수봉(國守峰)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바위굴 국수방(國守房)이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여지도서』 광주목에 "관아의 남쪽 30리에 있다.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구룡산 제2봉인 국수봉전망대에서는 서울 일대 및 경기도 한강 하류와 상류 지역까지를 전망할 수 있다. 설화에 의하면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인근을 지나가던 임신한 여성이 보고 크게 놀라 소리를 질러 용 한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하늘에 승천하지 못하고 죽은 용이 있던 자리가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데 실제로 산을 자세히 보면 9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룡산 기슭에 세종대왕이 묻힌 영릉(英陵)이 있었으나, 1469년(예종 1년)에 여주로 천장(遷葬)하였다. 초장지(初葬地)였던 작고개 넘어 내곡동에 국가정보원이 들어서 있고, 기슭에는 능인선원과 자룡사가 있다. 2015년 9월 13일 능인선원에 세계 최대 약사여래좌불을 점안하여 이름을 “서울약사대불”이라 명명한바 있다. -편집-
-대모산 헬기장에서 조망, 정상의 종합안내도, 삼각점-
대모산(大母山) :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과 일원동 남쪽에 위치한 높이 293m산이다.
산의 모양이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이방원)과 그의 비인 원경왕후 민씨 묘인 헌릉(獻陵)이 대모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왕명에 의해 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편으로는 서쪽에 있는 구룡산(九龍山)과 함께 두 봉우리가 여자의 젖가슴을 닮아 대모산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능인 인릉(仁陵)이 헌릉의 서쪽에 조성되었고 능참봉의 한옥이 남아있다. 그리고 대모산 북쪽에는 세종대왕의 5번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묘역이 있다. 이곳에는 광평대군의 양아버지인 무안대군(撫安大君) 이방번 내외의 무덤과 함께 가족의 공동묘역으로 조성된 곳이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부에 통일신라시대 산성의 흔적이 있으나, 헬리콥터 착륙장이나 서울종합방재센터의 전파탑, 예비군 참호, 돌탑 등으로 인한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다. 남쪽에 헌인릉이 있으며, 북서쪽에는 불국사라는 사찰이 있다. 산 남쪽 절반을 국가정보원이 점유하고 있어 산의 절반이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다. -편집-
-들머리 했던 윤봉길 의사 기념관, 한적한 여의천 풍경-
늙어 가느라 이곳저곳 기능이 떨어지니 부모님께 불효 뼈저려
사람은 잠자는 시간이 하루의 30%에 이른다. 한마디로, 잠이 부족하면 인지능력의 모든 영역에 과부화가 발생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현대인들의 수면시간이 매년 줄어들며 이런저런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통계가 안타깝다. 노인들이 이른 새벽 기침하시는 것은 부지런 때문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아 안전부절 하는 행동이다. ‘늙으면 뱃살과 노여움이 많아진다.’ 그런데 왜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들고 뱃살이 불어날까? 처방을 간단하다. 낮에 몸을 많이 움직이고, 수면에 나쁜 음식섭취는 금하며, 규칙적인 생활,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된다. 또 뱃살과 체중이 불어나면은 덜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 처방한다. 그걸 지금까지 몰라서 못했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렸고 체중을 줄이려고 고생 할까? 알아도 못 하는 사람이 많거나 그 처방으론 해결이 불가하다. 실천 가능한 방법을 내 놓아야 할 의학전문가들의 숙제일 것이다. 나이 들고 늙어가면서 돋보기안경은 자연스럽게 필수품으로 변했고, 뭉칫돈이 들어간다는 전제로, 망가지면 치아(임플란트)를 새로운 치아로 대체해서 불편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부모님세대에는 임플란트가 아니라 틀니였으므로 주무실 땐 빼놓으셨다. 마음이 불편해 시선을 돌려 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피했었다. 부모님 연세와 가까워지고 보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님을 늦게야 알았고, 얼마나 불효(不孝)했는지를 뼈저리게 느껴 후회와 반성을 반복한다.
-지나쳤던 범바위산, 인릉산 정상, 철조망과 작별 하산점-
인릉산(仁陵山) : 서울시 서초구와 경기도 성남시에 동서향으로 뻗어 내린 해발 326.5m 산이다.
'대동여지도'나 '광주부읍지'에는 '천림산(天臨山)'이란 이름으로 기록 되었으나 산의 북쪽에 위치한 순조의 능인 '인릉'의 조산(朝山)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무단으로 왜곡한 것이라고도 하며, '인릉'은 대모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인릉산이란 산 이름은 북쪽에 위치한 순조의 능인 인릉의 조산(朝山)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여겨진다. 인릉은 대모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 23대 임금인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원래 대모산은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의 헌릉이 자리하면서 '노파'보다는 '어미'라 부르는 것이 낫다는 세종의 어명에 의해 대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위키백과-
-무인 산불 감시 카메라, 날머리 옛골 서울과 성남시 경계-
넘어져도 털고 일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세상이므로 위를 보며 살아가야 할 때가 있고, 아래를 살펴야 할 때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옆은 물론 뒤까지 들여다봐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성찰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알아가겠다는 목표로, 좌절보다는 이해하고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멸시하거나 학대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라면, 생애 두세 번쯤 넘어졌더라도 털고 일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믿음이면 충분하다. 도심에선 목격하거나 실감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풍경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힘들더라도 도심 속의 산에 오르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 때늦은 설경 같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선 떠나기 싫은 겨울의 몸부림 같은, 온통 하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절기상 우수(雨水)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계절의 변화 때문이겠지만, 일몰 시간도 좀 늦어진 것 같고, 화사한 햇살은 이미 봄 한가운데로 달려가는 변덕심한 계절이다. 날씨 예측이 불투명한 자체까지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며 그리움이니 기쁘게 견뎌내야겠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5-02-19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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