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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 이름 그대로의 오봉 풍경-
도봉산(道峰山) <우이역-무수골-원통사-오봉-여성봉-72사단 날머리>
제242425112호 2025-11-23(일)
◆자리한 곳 : 서울시 강북. 도봉구, 경기도 양주시.
◆지나온 길 : 북한산우이역-원당샘공원/연산군묘-쌍둥이전망대-무수골센터-자현암-원통사-우이암-오봉삼거리-오봉능선-오봉제1봉-여성봉-오봉센터-72보병사단정류장
◆거리및시간: 6시간09분(10:45~16:54) ※ 도상거리 : 약14.8km <걸음 수(步行數) : 26,424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하루 종일 흐림 <‘해 뜸 07:20’ ’해 짐17:16’ ‘최저 7도, ’최고 14도’>
산행거리를 늘리려고 짜깁기해서 완성한 코스
연말이 가까운 11월 하순인지라 백수인데도 별다른 까닭 없이 평년보다 바쁘다. 그래서 지긋이 눈감고 생각해보 이유가 어른거린다. 금년은 “음력 6월에 윤달”이 들었다. 윤달로 인해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님 묘소에 지내는 제사>가 자연스럽게 늦어졌다. 보통의 경우는 11월 중순이면 시제가 끝나는데 올해는 11월29일(음력10월10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연말과 시제 준비를 병행해야 하므로 시간이 빠듯하다. 아무리 바빠도 당연하게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건너뛸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정신무장에 도움이 되는 난이도 높은 산행을 생각한다. 오랜만에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란 별칭으로 통하며 마주하는 바위마다 넘어서는 재미가 쏠쏠한 도봉산행을 결정했다. 문제는 다양하게 들, 날머리를 선정해서 시뮬레이션(simulation)하지만 산행거리가 10km에 미치지 못한다. 고육지책으로 산행거리를 늘리지 않으면 만족도가 모자라, 북한산둘레(왕실묘역, 방학동)길을 연결해서 코스를 설계하니 14km의 거리가 나왔다. 북한산우이역을 들머리해서 원당샘공원(연산군묘), 무수골을 경유하는 총14km 남짓의 산행 코스가 완성됐으니 답사하고자 배낭을 꾸렸다.

-일요일이라 평일보다는 등산객들로 분비는 북한산 우이역-
북한산우이역(北漢山牛耳驛) :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의 지하철역이다. 도선사입구역으로도 사용된다. 모든 구간이 지하철이다. 인근에 도선사가 위치해 있다. 북쪽에 국내 최초로 지하에 건설된 우이차량사업소가 있다.
도봉산(道峰山) :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양주시 장흥면의 경계에 있는 높이 739.5m산으로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지구에 속한다. 백두대간의 추가령(楸哥嶺)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연봉을 따라 운악산·불곡산을 거쳐 남서쪽으로 내려오다가 서울 동북쪽에서 우뚝 솟아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최고봉인 자운봉(紫雲峰, 739.5m),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선인봉(仙人峰), 서쪽으로 오봉(五峰)·여성봉이 있다. 서울수도권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철 등산객으로 북적인다. 빼어난 봉우리와 맑은 물, 가을 단풍과 흰 암석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서 아기자기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을 연출한다. 울퉁불퉁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아 있어 남성적이지만 여성스러운 맛도 다소 가지고 있다.


-연산군 묘/ 원당샘공원 우물과 기념물인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공원 :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공원으로 약 600년 전 파평 윤씨 일가가 정착한 원당마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의 주요 시설인 원당샘은 원당마을의 이름을 딴 것으로 수백 년 동안 생활용수로 공급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지하수를 연결하여 원당샘이 마르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전통 연못으로 복원하였다. 전통 연못 원당샘과 그 곁에 있는 정자 사모정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책코스가 된다. 복원 공사를 하며 심어진 13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시원한 쉼터를 마련해 준다. 가을이면 원당샘공원 내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된 800살이 넘은 아주 큰 은행나무에 단풍이 물들고 나무 주위로 데크길이 있어서 둘러보기 좋다.


-물과 풍광이 좋아 아무런 근심이 없다는 자연마을 무수골-
무수골 :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럭키아파트 옆의 무수천을 거슬러 1.5㎞가량을 올라가면 자연마을에 이른다. 무수골이란 마을 이름은 1477년(성종8년)세종의 9번째 아들 영해군의 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 옛 명칭은 수철동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무수동으로 바뀌었으며 무수(無愁)골은 ‘무수울’이라고도 한다.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 세종이 먼저 간 아들의 묘를 찾아 왔다가,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무수골은 그린벨트 내에 있어 자연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등산객들의 좋은 휴식처로 꼽히고 있다. 특히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어 모내기와 추수, 탈곡 등 체험행사도 볼 수 있으며 인근에 있는 주말농장은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각종 채소를 직접 재배 수확함으로써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자현암(慈賢菴) :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 무수골의 원통사, 우이암 아래에 있는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비구니사찰로, 혜향(慧香) 스님이 1943년 폐절터를 재건하여 조성하였다. 1991년 요사채를 새로 건립하였고, 2011년 종각을 새로 지었다. 요사채,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경내에 주지 김혜향의 공로비가 세워져 있다.


-도봉산 최고 길지며 기도발 좋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진 원통사-
원통사(圓通寺) :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 잡은 수행기도처로 옛날부터 알려졌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를 비롯해서 근대에는 만공·동산·춘성스님 등 선지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관음기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 서명균 등이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현재 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큰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 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새겼다는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씨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천혜의 관음성지라고 믿고 있다.

-쇠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우이암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다-
우이암(牛耳岩) :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에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해발 542m 봉우리다.
봉우리의 모습이 소의 귀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본래는 바위의 모습이 부처를 향해 기도하는 관음보살을 닮았다 하여 관음봉(觀音峰)이라고도 하고, 사모관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사모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봉산에 분포하는 많은 바위들이 호랑이·코끼리·두꺼비·코뿔소·학 등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하고 관음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다고 하여 불교에서는 우이암을 관음성지(觀音聖地)라 여기기도 한다.

-특이한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오봉(五峰)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 위치한 해발 662m 봉우리다.
이름 그대로 다섯 개의 웅장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진 우람한 남성을 상징하는 암봉으로, 최고봉인 제1봉을 제외한 나머지 봉우리는 각각 70~80m 높이의 화강암 직벽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꼭대기에는 '감투'처럼 큰 바위가 얹혀 있는데 네 번째만 없다. 전문 등산인들이 자주 찾는 봉우리로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더라도 절경을 확인할 수 있다. 장비를 갖춘 전문가만이 오를 수 있는 암장이 형성되어 있다. 2인 이상 보호 장구를 소지한 경우에만 오봉에서의 암벽 등반이 허용된다. 제1봉 근처에는 오봉 샘터가 있다. 가운데 있는 봉우리(제3봉)는 거북이가 산을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자연의 신비로움은 음양을 오묘하게 표현한 오봉과 여성봉-
여성봉(女性峰) : 경기도 양주시 송추 송추남능선 중간쯤 자리한 해발 504m의 봉우리다.
산봉우리가 여성이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해 여성봉이란 이름이 붙여진 정상에 오르면 오봉의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재미난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강암바위의 자연적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암봉으로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전해오는 전설이야기 : 옛날 어느 고을 원님이 슬하에 딸 다섯을 두었는데 미모가 출중해 눈독 들이는 총각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원님의 딸들을 매우 사모하던 다섯 형제가 있었다. 원님은 다섯 형제의 힘을 시험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가장 큰 바위를 올려놓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다섯 형제 중 넷째를 제외한 사형제는 각자 큰 바위를 들어 산 정상에 올려놓았지만, 넷째는 힘이 부쳐 바위를 올리지 못했다. 결국 원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딸은 죽고 다섯 형제도 모두 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옥황상제가 원님의 딸을 오봉이 마주 보이는 곳에 여성봉으로 환생시켜 주었고, 다섯 형제는 각각 오봉으로 환생하여 여성봉을 애타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무수골의 단풍은 아직도 곱기만 하다,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들-
도봉산(오봉과 여성봉) 산행을 마감하며
이런저런 다양하고 애달픈 전설들로 인해서 오봉의 신비로움은 더해만 가고, 북한산국립공원(북한산, 도봉산)이 기네스북에 등재되고도 넘칠 만큼 많은 등산객들이 오봉과 여성봉을 찾아온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봉산의 무명봉에 불과하던 봉우리가 여성봉란 이름을 갖게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성리학이 지배하는 나라 조선의 정서로는 물론이고, 배고팠던 시절에 밥벌이완 거리가 있는 해학은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다. 나무꾼이 땔나무하기도 바쁜데 조금은 고급스런 상상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봉과 여성봉의 전설은 근래에 들어와 전문 이야기꾼에 의해서, 그럴듯하게 창작됐고 현대에 맞도록 각색된 설화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오봉센터에 이르렀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산행코스를 늘려서 송추마을구간으로 방향을 잡았고 북한산둘레길 따라 올림픽부대(72보병사단)정류장에서 계획대로 산행을 마감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5-11-25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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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