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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정상석, 백악마루에서 바라본 북한산 능선-

한양도성
<()보다 소중한 시간, 짧은 가을이 흘러감이 아까워 찾은 북악산>

2211023100호          2023-10-15()

자리한 곳 :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나온 길 : 흥인지문-낙산성곽-낙산정상-혜화문-와룡공원-말바위-숙정문-곡장-청운대-북악산-창의문-경복궁역
거리및시간: 3시간18(10:35~13:53)         도상거리   : 7.8km+2.1km <보행수(步行數)   : 15,913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구름 많으나 비교 맑음 <해 뜸 06:40    해 짐 17:56   /   ‘최저 11,    최고 20’>


-동대문 이화사거리에서 산행들머리 한다-

강릉역-청량리역(KTX) 열차표 2번씩이나 취소하고 재발급한 까닭?
오늘(15)까지 강릉주변의 산줄기 산행이 예정되었으므로 일주일전에 KTX-이음 862(17:50 강릉역 출발)열차표를 매표했는데 어제저녁, 내일아침에 상경하도록 10:05 열차표를 예매하라며 말을 흐렸으나 취중농담이겠지 생각에 대처하지 않았는데,
필요이상 이른 새벽(4)에 일어나 접등(點燈)하고 씻더니 코레일 톡으로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어쩌겠는가? 개별적으로 행동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스마트폰으로 KTX-이음 852(10:05 강릉역 출발)열차표부터 매표한다. 새벽에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 조반을 해결하고 베이스캠프(모텔)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열차표가 있으면 일찍 상경하자는 제안에 기쁜 마음으로 예매시스템을 작동시켜 매표(강릉출발:08:30-청량리도착:10:13)하고보니 욕심이 늘어나 10시전에 원주역이나 양평역에 도착하므로 치악산이나 용문산행하고 귀가하면 되겠다는 야심으로 원주역과 양평역 매표를 주문했으나 KTX-이음 808 열차는 통과역(通過驛)이라 아쉽다 하지만 금쪽같은 하루를 허송세월하느니 청량리역에 도착하면 꿩 대신 닭이라도 좋으니 1호선전철로 갈아타고 동대문역을 들머리로 낙산-북악산-인왕산-안산-백련산행 하고 귀가를 마음에 두고 청량리역이 가까워지자 하차를 서둘러 빠르게 1호선전철로 갈아타고 동대문역에 하차해 복장을 갖추고 산행을 시작한다.(10:35)


-한양도성 축성에 관련된 기록들이 입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북악산(北岳山) 한양도성(漢陽都城) 54년 만에 국민 품으로 완전 개방
한양도성은 지난 6백여 년 동안 조선과 대한제국 대한민국 수도의 튼튼한 울타리로 존재해왔다 청와대 경호와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북악산 한양도성 등산로 구간을 오랜 기간 통제해 오다 20064월부터 홍련사에서 숙정문을 거쳐 촛대바위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이 개방되었다. 1년 후 20074월에는 와룡공원에서 출발에 숙정문과 청운대 백악마루를 거쳐 창의문에 이르는 4.3km 구간을 추가 개방했다. 201944월에는 기존에 신분 확인 절차를 없애고 개방 시간을 확대했다 201011월에는 북악산 북측에 해당하는 곡장과 청운대, 평창동 구간을 20224월에는 숙정문과 청운대 참 삼청동으로 연결되는 길을 추가 개방하였다, 20225월에는 청와대 전면 개방으로 지난 54년간 단절되어 있던 청와대-백악정 구간(북악산 남측)을 완전개방하게 되면서 비로소 북악산을 온전히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게 되었다.               -문화재청 홈 페이지-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인 흥인지(동대)문 풍경-

흥인지문(興仁之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88 대한민국의 보물 제1. 서울 성곽의 동쪽에 있는 대문으로,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불린다. 조선 초부터 창건하기 시작해1398(태조 7)에 완성되었다. 지대가 낮아 땅을 돋운 후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보다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축조 당시 성문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흥인(興仁)’이란 어진 마음을 북 돋운다는 뜻으로, 유교사상의 덕목인 ()’을 의미한다. 그러나 1868(고종 5) 흥인문이 크게 손상되어 정비할 때에,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고 하여 ()’자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등 현판이 세 글자인 다른 도성의 사대문과 달리 네 글자 현판을 달게 되었다완성된 지 50여 년이 지난 1451(문종 1)1453(단종 1)에 일부 보수작업이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868(고종 5)1년 동안 전면적인 개수 공사를 진행해 1869(고종 6)에 완공되었다. 한편, 일본이 1934년에 본래의 이름인 흥인지문이 아닌, 동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동대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흥인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다음백과-



-한양도성 낙산구간 진입로, 낙산조망지점에서 바라본 풍경-

낙산(駱山) : 서울특별시 종로구·성북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으로, 조선의 수도 한양의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이다. 풍수지리상 명당이라 하여 한양에 수도가 입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고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과 마주본다. 한양도성이 능선에 축성되었다. 조선시대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낙산은 조선시대 때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인왕(仁王쌍계(雙鷄백운(白雲청학(淸鶴)을 도성 안의 5대 명승지로 손꼽았는데, 이 중 현재의 이화동에 있던 쌍계동이 기묘한 암석과 울창한 수림에 두 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다 하여 세 번째로 꼽혔다. 일제는 1920년부터 펼쳐진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봉쇄하기 위해 동숭동에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설립했고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설립했다. 해방된 뒤에 이곳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의대로 바뀌었다. 해방 뒤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가 계속되자 서울대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고,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 종로의 교통이 막혀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5년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를 통합해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겼고, 그 뒤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었다.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다.                   -위키 백과-



-낙산 순성길 안내판, 새로 복원된 혜화(동소)문 풍경-

혜화문(惠化門) :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한양성곽의 4소문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우진각지붕건물.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웠다. 이 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나서면 수유현(지금의 수유리)을 거쳐 의정부·양주로 도로가 이어졌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혜화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으로 하였다가 1483(성종 14)에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역시 홍화라고 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중종 6)에 혜화로 고쳤다. 건물은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1684(숙종 10)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 뒤 한말까지 동북 방면의 성문으로 보존되어오다가 1928년에 도시의 확장과 더불어 헐렸다. 지금은 문이 있던 위치만이 알려져 있고 문과 관련된 유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문의 모습은 아래쪽에 하나의 아치형의 출입구를 둔 돌로 쌓은 육축(陸築)이 있고 그 위에 누각을 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소규모 성문의 형태를 취하였다. 육축에는 하부를 큰 장대석으로 받치고 그 위에 무사석(武砂石 : 대석의 일종으로 보통의 성을 쌓는 성석(城石)보다 훨씬 정밀하고 반듯하게 가공한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올렸으며 위쪽 좌우에 2개의 석루조(石漏槽 : 육축의 윗면 배수를 위해 성벽 상부에 설치한 석물)를 돌출시켰다. 그 상부에는 낮은 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가퀴城堞를 두었다. 기둥 사이에는 판문(板門)을 달았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칠하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를 올렸다. 천장에는 봉황을 그려 이 일대를 새들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는 말이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와룡공원주변 안내도, 국가시설물로 성곽우회길-

와룡공원(臥龍公園)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와 와룡동 등에 위치한 공원이다. 북악산 동쪽 기슭의 성균관대학교 부근에 조성되었다. 1940년에 처음으로 공원용지로 지정되었으나, 공원으로 조성되지는 않아 1981년 당시에는 서류상으로만 공원이었다. 198811월에 종로구청에서는 와룡공원을 1991년까지 조성한 공원이다.                -위키 백과-



-북악산 1.21사태 소나무, 북한산 백운대를 모방한 청운대-

북악산(北岳山) : 서울특별시 종로와 성북구 성북동에 걸쳐 있는 높이 342m의 산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한양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고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행을 서둘러 마감한 창의(자하)문, 한양의 주요하천 청계천 발원지-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행한 한양도성 산행 스케치
세상사 마음먹는 대로 된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하지만 현실은 어긋나기 마련이니 책망할 일만은 아니다. 야심찬 계획(낙산-북악산-인왕산-안산-백련산-귀가)을 완성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여 흥인지(동대)문을 출발해 낙산성곽에 올라서 가을이 깊어가는 시내풍경을 즐기며 낙산정상(124.4m/조망지점)을 경유해 한양도성 순성길 암문을 통해 성곽 밖으로 나왔다.  낙산 순성길따라 혜화문앞 횡단보도에 이르러 신호를 기다려 오래전 훼손된 성곽 수리구간을 빠져나와 다시 한양도성에 복귀해 와룡공원을 뒤로하고 산길에 들어서 말바위안내소에 이르러 의자에 앉아 빵 한조각과 유제품 한 병으로 점심을 때우는 중에 전화벨이 울려댄다.(12:03) 신경수님께서 칼바위님과 가좌역(모래내시장)에서 우리 셋이서 13시에 한잔하기로 약속했으니 참석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니, 사실대로 이실직고 지금 산행중이며 말바위안내소에서 다리쉼중이니 북악마루를 경유해 하산을 서둘러, 콜택시로 달려가더라도 2시간이상 소요가 예상되나 최선을 다해 14시까지 도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숙정문-북악산곡장-청운대-북악마루-북악산-창의문으로 하산하며 카카오택시 예약을 시도해 보지만 앱을 설치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창의문에 내려서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경복궁역을 향하며 택시를 잡아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경복궁역에 이르러서야 어렵게 택시에 탑승했고 5분쯤 지각해서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나 한편으론 금년도 100번째로 의미 깊은 산행인데 이런저런 돌출사고로 인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시시해서 안타깝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3-10-2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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