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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정상 아침풍경, 멀리서도 북한산은 웅장하다-


불암산<고향모임에 참석하려고 짧은 산행& 강릉과 태릉 답사>
2222023111호          2023-12-02()

자리한 곳  : 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남양주시
지나온 길  : 당고개역-덕릉고개-불암산-깔딱고개-불암산성-불암능선-노원고개-제명호-삼육대학-강릉-태릉-선수촌-화랑대역
거리및시간: 4시간54(07:30~12:24)         도상거리    12.9km  <보행수(步行數)   :  21,640>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구름 많고 흐림<해 뜸 07:28     해 짐 17:14    /    ‘최저 -4,     최고 6’>

산행 후 고향 친목모임에 동참하려고 주말 새벽부터 서두른다.
달력상으론 겨울의 시작을 12월부터며 끝자락을 2월까지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는데, 오늘이 12월 둘째 날이므로 사실상 겨울에 들어선지 이틀째에 해당하는 122()이라 장거리 산행을 계획은 했었으나, 고향(신안군 하의도 대리1)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을 개구쟁이로 함께 살아낸 형과 아우들이 향토(하의도나 목포시 아니면 광주광역시 등지에서)학업을 끝내고, 어렵게 마련한 직장을 사수하려는 마음으로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며 수도권에 잡초처럼 뿌리내리고, 새로운 둥지를 틀고 당당하게 시민으로 살아가는 선후배들이 2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여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보자는 목적으로, 15년 전에 친선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침목모임이라 이런저런 모임들엔 건성으로 얼굴을 내밀지만, 유일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열렬하게 응원하는 덕봉(고향마을 동네 뒤)에 이름을 차용해온 덕봉친목모임’엔 반드시 참석해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한상황이라, 비교적 짧은 산행지인 불암산행을 끝내고 귀가해 씻고 의상을 갖춰 입고 모임에 참석하려는 계산으로 새벽시간부터 서둘러 산행을 준비했다.



-수락산과 불암산을 경계한 덕릉고개 풍경-

덕릉(德陵)고개  :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높이 156m의 고갯마루다.
조선조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묘소인 덕릉이 고개 동쪽에서 유래된 이름이나 덕릉현이라고도 한다. 덕릉으로 부르게 된 설화를 보면, 선조는 생부인 덕흥대원군이 세상을 떠나자 묘소를 능으로 승격시키고 싶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 불가하다고 대답해 선조는 정식으로 능으로 승격은 단념하고 한 가지 방법을 꾀하였다. 어느 날 동대문 밖 시탄상인(장작과 숯을 파는 장삿꾼)을 불러서 너는 가게에 있다가 지나가는 시탄상인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덕흥대원군의 능을 지나왔다고 하면 후히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고가로 사들여라는 명을 받은 시탄상인이 그대로 이행하니 소문이 퍼져 5강의 시탄상인들까지 일부러 동대문 쪽으로 찾아와 덕릉을 지나왔노라고 하였고 그 뒤부터 저절로 덕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해온다.                         -네이버 편집 글-  



-다람쥐광장에서 바라본 불암산& 도봉산 풍경-

불암산(佛巖山)  : 서울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높이 508m의 산이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처럼 서울 도심지에 있는 산이다. 멀리서 보면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바위산이라고 해서 불암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덕능고개를 사이에 두고 수락산과 이웃하여 종주도 가능한데, 체력이 강한 등산애호가들은 불암산-수락산-도봉산-삼각산 순으로 4개산을 종주하기도 하는데 15시간 이상 소요되는 4산종주라 한다. 산 높이는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동네 야산 정도는 아니고 바위산이라 높이에 비해 경관이 좋다. 불암산은 바위, 그 중에서도 사암 화강암으로 된 산이므로 기암괴석이 곳곳에서 보인다. 여름철 한정 정상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상주한다. 수락산과 비슷하게 정상 부근과 중턱 곳곳에 막걸리와 안주를 파는 천막형 주점이 있다. 주변의 다른 산처럼 위험구간은 계단이나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초등학생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 연휴기간에는 부모님과 같이 정상에 오르는 초등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암벽이 있는 일부 구간은 어린이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인접한 지하철역으로는 상계역, 당고개역, 별내별가람역, 화랑대역이 있고, 인접한 대학교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육군사관학교이다. 삼육대는 불암산 일부를 소유했다. 이곳에는 4000 m² 규모 인공호수 '제명호'가 있다. 서울북부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에 비해 많이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주변 인구가 많은 아파트단지 바로 옆에 있고, 지하철이 다니는 등 교통이 편리하며, 산 높이가 낮아 가볍게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일명 불수사도북(강북5) 종주산행이 산악인들 사이에서 진리로 인정받고 있는 코스로 준족이라 하더라도 무려 15시간 정도 등산해야 완주할 수 있는 코스이고 암벽이 많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거의 완주하기 힘들다는 것이 특징이다삼국시대에 축조된 불암산성이 존재한다. 위치는 현재 헬기장으로 쓰고 있는 제2봉우리로 봉우리 주변을 따라 오각형으로 축조 되었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심각하게 훼손되어 현재는 성벽 일부만이 남아있으며, 헬기장 근처에는 산성의 집수시설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있었는데 노원구가 불암산성 사적등록을 위해 2018년부터 시작한 불암산성 발굴조사후 정비를 한다며 메워버렸다.. 당시 정비과정은 제대로된 계획이나 관리 감독없이 현장에서 중장비와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졌다. 노원구에서는 2025년 까지 지속적인 정비를 계획하였으나 발굴조사후 별다른 성과가 없고 사적 등록이 불투명한 현재 계획은 정지해 있는 상태이다. 이름 때문에 최불암의 산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는데, 실제로 이 산의 이름에서 따온 예명이다. 한자 표기 역시 '崔佛岩'이다. 그런 고로 노원구에서 최불암을 명예산주로 임명했지만 지자체 홍보 차원일 뿐, 국유지이기에 당연히 산 주인 따위는 없다. 불암산 정상 부근에는 최불암이 쓴 글귀가 있는데, 이 불암산을 자신의 예명으로 쓴 것이 혹시나 산의 영험함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 죄스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또한 'Fireegg Mountain'이라고 쓰이기도 하는데, 농담이 아니고 불암산의 유력한 어원 중 하나가 그 불알이라고 한다(...). 한국전쟁(6.25)당시 내촌-태릉 전투에서 낙오한 육사생도 및 포천 전투에서 살아남은 9연대 부사관과 병사10여명이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를 조직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들이 임시로 기거하던 굴도 몇 개 남아있는데, 현재 육군사관학교 기초(화랑)군사훈련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동굴들은 석천암 부근에 있으며 세 번째 동굴은 석천암 위쪽에 있다. 불암콩콩코믹스의 최의민의 필명인 '불암콩콩'이 여기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위키-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암산성-

학도암(鶴到庵)  : 서울시 노원구 불암산(佛巖山)에 있는 조선후기 무공이 창건한 암자다.
조선후기 1624(인조 2) 무공(無空)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창건한 사찰이다. 초기의 사찰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절 주위의 불암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고 하여 학도암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878(고종 15) 벽운(碧雲)이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성담(聖曇)이 주지로 있을 때 산림 10여 정보(町步)를 매입하여 절을 확장하였다. 1950년의 6·25전쟁 때 절이 소실되었고, 이것을 1965년 주지 김명호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 뒤편 암벽에는 높이 13.4m의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磨崖觀音菩薩坐像)이 새겨져있는데 1870년대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1819(순조 19)에 제작된 부도가 남아 있다.                 -편집 글-

불암사(佛巖寺)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서울근교 사대명찰 중의 하나로서, 세조 때 왕성 사방에 왕실의 원찰(願刹)을 하나씩 정할 때 동불암(東佛巖)으로 꼽혔던 곳이다. 입구 제월루(霽月樓) 앞에 세워져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天寶山佛巖寺事蹟碑)에 의하면, 824(헌덕왕 16)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일으켰던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하였고, 도선(道詵)이 중창하였으며, 무학(無學)이 삼창하였고, 그 뒤 성종 때 중건하였고, 1782(정조 6) 서악(西岳)이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제월루(霽月樓)를 다른 곳으로부터 이건하였다. 1855(철종 6)에 보성(寶性춘봉(春峯혜월(慧月) 등이 중수하였으며, 1910년 독성각·산신각·동축당(東竺堂)이 창건되었다. 1959년에는 만허(滿虛)가 칠성각을 지었고, 1989년에는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각각 3과와 4과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진신사리보탑을 세워 봉안하였다. 1991년 관음전이 소실되었으나 1992년에 중건하였고, 1994년에는 일주문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금당(金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제월루·관음전·칠성각·경판고(經板庫일주문·요사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91호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 212매의 목판이 있다. 1638(인조 16)에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이어온 것을 판각한 것으로, 고창 선운사(禪雲寺)와 이 절에만 보존되어 있는 귀중본이다. 이 밖에 경기도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된 379매의 경판 중 언해판 4종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암벽에 조각한 마애삼존불은 조각솜씨가 우아하다. 부속암자로는 창건연대는 비슷한 약 150년 전에 중건된 석천암(石泉庵)이 있다. 호인상(好人像)이 특이한 마애불이 있으며, 석간수 또한 유명하다.                  -위키 백과-



-얼어붙은 제명호에서 겨울이 느껴진다. 삼육대학 교내 고인돌-

석천암(石泉庵)  :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 이후 기록은 물론 고려시대의 기록도 없고 다만 조선시대 고종 19(1882)에 병역제도의 개편으로 오위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五衛將) 이장군(李將軍)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고 전한다. 2015년 독일 경매에서 환지본처(還至本處)된 지장보살 시왕도 불화 1점이 있는데 그 화기(畵記)에 봉안처가 <양주 천보산 석천암'(揚州天寶山石泉庵)>이고 조성연대는 1848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석천암은 적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존속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석천암 지장보살시왕도는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1899년에 거사(居士) 김한구(金漢九)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1956년에는 주지 창근(昶根)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당우로는 201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13년에 재건한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가 있고, 마애약사전이 있으며 마애미륵불입상이 있다.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스님이 조성하신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옮긴 글-



-조선의 13대왕(명종과 인순왕후)께서 영면하신 강릉 풍경-

강릉(康陵)  :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광릉, 숭릉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명종은 모후 문정왕후의 3년 상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난 1567(명종 22)에 세상을 떠나, 태릉 동쪽 언덕에 먼저 능을 조성하였다. 그 후 1575(선조 8)에 인순왕후 심씨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강릉 좌측에 쌍릉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중종의 3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태릉, 강릉 숲길은 동절기엔 폐쇄-

태릉(泰陵)  :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에 있는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태릉은 왕비의 단릉(單陵)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능제를 따르고 있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만석에는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원래 십이간지가 문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 십이지신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밖에 석양, 석호,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문무석인, 석마 등을 봉분 주위와 앞에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에는 홍살문, 판위,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었으며,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1565(명종 20) 문정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에 문정왕후의 능 자리를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 곁에 묻히는 것을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문정왕후는 현재의 자리에 묻히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의해 능이 파헤쳐졌다는 기록이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계획대로 산행마감 후 고향친목모임 참석한다.
12월의 둘째 날리며 주말 흐리고 구름 많은 날이나 강추위가 누르러들어 활동에 불편함이 줄어들어 다행이다. 고향섬마을 출신의 선후배들의 모임시간인 17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벽부터 15시쯤까지가 자투리시간이다.  아까운 시간을 아끼는 차원에서 가벼운 산행지로 확정한 불암산헹 만으론 너무나 모자라고도 부족했기에 하산로 길목에 자리한 조선왕릉, 강릉(康陵 : 명종과 인순왕후)과 태릉(泰陵) : 문종왕후)을 추가해서 답사하는 것으로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귀가했으나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므로 샤프용 염색약으로 흰머리를 조금 감추고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즐겁게 모임에 다녀왔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3-12-04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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