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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으로 향한 한양도성, 국보 제1 호 숭례(남대)문 풍경-
‘한양도성’ 더위와 동행<도상거리:18.6km, 실제거리:21.6km>하며 완주
제2268024037호 2024-07-11(목)
◆자리한 곳 : 서울 종로. 서대문. 성북. 중구.
◆지나온 길 : 돈의문-경교장-인왕산-북악청운대-혜화문-낙산-동대문-광희문-남산팔각정-숭례문
◆거리및시간: 7시간57분(06:57~14:54) ※ 도상거리 :약21.6km <걸음 수(步行數) :36,388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안개로 매우 흐릿한 날 <'해 뜸 05:20 해 짐 19:55' ‘최저 22도, 최고 31도’>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 아는 만큼 보인다, 알아야만 참을 본다.
지난 주말 사람에게 받았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얼마만큼은 평정심을 찾아가는 시점이다. 자연스럽게 정신치유 목적의 힐링 산행에 관심이 지대하나, 장마철 기습폭우가 잦은 날씨 때문에 마음뿐이라 아쉬워하던 차에 희망적인 날씨정보다. 내일은 장맛비가 잠시 쉬어간 대신 무더위를 예보한 모처럼 찾아온 산행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육신을 혹사시켜야 머릿속의 잡념이 걸러지는 원초적인 방법이 불만이다. 하지만 나에겐 검증된 특효약이 무더위에 도전하는 한양도성 종주를 확정한다. 모든 세상사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서울성곽 관광안내지도“를 펼쳐들고 늦은 밤까지 씨름했다. 얻은 결론은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알아야 진짜배기를 만날 수 있거나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느라, 수면시간 부족으로 2시간쯤 눈을 붙였지만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알람이 울려 자리에서 일어나 식수(2.5리터)와 빵(2끼 식사)으로 배낭을 꾸려 현관문을 나선다. 지하철 응암역(6호선)에서 공덕역으로 이동, 5호선으로 환승 서대문역에 하차, 해우소로 달려가 근심부터 풀어낸다. 땡볕의 무더위에 대비한 복장을 꾸리고 4번 출구를 빠져나와 돈의문 터(강북삼성병원)에서 힘차게 도전 한양도성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06:57)
한양도성(漢陽都城) :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의 주위를 둘러싼 성곽과 문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경교장(京橋莊)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새문안로 29 (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일본식 주택이다.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 6월 25일까지 사용하다 암살된 백범 김구(金九)의 개일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한국독립당 본부였다. 2005년 6월 사적 465호로 지정되었다.
홍난파 가옥(洪蘭坡 家屋)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파동에 자리하고 있는 주택이다.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지은 붉은색 벽돌 벽체에 기와를 얹은 서양식 건물로 2004년에 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됐다. 작곡가 홍난파가 인수하여 6년(1898~1941)간 살았던 곳으로, 공연장과 전시실을 겸한다. 독립운동과 친일로 이어진 한 예술가의 궤적으로 사실 그대로의 지난 역사를 기억한다.
권율(權慄)장군 집터 : 조선 중기1537~1599)의 문신, 군인, 정치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또는 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 등을 승리로 이끈 무장으로서의 업적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권율(장군)도원수의 집터에는 48여년묵은 은행나무(1976년 서울시 보호수 지정, 높이 24m, 둘레는 680cm)아래 안내판이 서 있다.
인왕산(仁王山) : 서울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고도 338.2 m의 산이다.
바위산이기 때문에 조망도 좋고 기차바위·치마바위·매바위·범바위·이슬바위·모자바위·선바위·지렁이바위 등이 저마다 기이한 모습들을 뽐내고 있다. 산수화로 겸재 정선의 국보 제216호 ‘인왕제색도‘가 유명하다. 동쪽에는 경복궁, 서쪽에는 무악재, 남쪽에는 독립공원, 북쪽에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있다.
창의문(彰義門) :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1년에 세운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양주군과 의주군으로 향하던 관문으로, 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소문(北小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다.
-북악산 성벽이 무너져 통제로 백악마루 출입불가, 청운대로 대처-
북악산(北岳山) : 서울의 경복궁 북쪽에 있는 높이 342m로,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경복궁의 진산(鎭山)으로 서울 한양도성의 기점이기도 하다. 인왕산, 낙산, 남산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이다.
숙정문(肅靖門) : 한양도성의 4대문 중 북문. 일명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부른다.
1396년(태조 5년) 9월에 도성 사대문과 사소문을 준공할 때 함께 세운 문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산 25-22에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문루(門樓)가 없었지만 1976년에 복원할 때 세웠다.
와룡공원(臥龍公園) :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와 와룡동 등에 위치한 공원이다.
1984년에 개원한 공원으로 서울우수조망명소인 북악산 '말바위'를 내려와 성곽길을 따라가면 와룡공원이 나온다. 와룡공원은 삼청공원, 창경공원, 북악산 도시자연공원이 인접해 있는 곳으로 용(龍)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여 와룡동이라고도 한다.
혜화문(惠化門) :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된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했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으로 불렸다. 1592년 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94년 원래 위치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복원했다.
-낙산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삼각산과 북악산 풍경-
낙산(駱山) : 서울시 종로구·성북구에 걸친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동서(東西)로 마주보며 대치하는 높이 125m 산이다.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으로, 조선의 수도 한양의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이다. 생김새가 낙타(駱駝)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불린 낙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 서울시 종로구 종로 288(종로6가 69)에 있는 한양도성의 동문이며,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고도 불린다. 한양도성 사대문(四大門)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조선시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1396년(조선 태조 5년)에 처음 지었으며, 이후 단종 1년(1453) 중수를 거쳐, 고종 6년(1869)에 지반을 돋우고 문루를 새로 지은 것이 현재모습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계천(淸溪川) : 서울시의 하천. 총 길이 10.84㎞, 유역 면적 59.83㎢이다.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백운동 계곡’이며, 남으로 흐르다가 청계광장 부근의 지하에서 삼청동천을 합치며 몸집을 키운다. 이곳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서울의 전통적인 도심지를 가로지르다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든다.
광희문(光熙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간문 중 하나로 남동쪽에 위치했다.
수구(水口), 시구문(屍口門)이라고 불렀다.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으로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422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되며,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남쪽으로 12m를 옮겨가 문루와 함께 다시 쌓은 모습이다. 지금도 광희문 자체는 원위치로 가지 못했고 성벽도 한쪽은 끊어져 있다.
장충체육관(奬忠體育館) : 서울시 중구 동호로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직접 설계하고 삼부토건이 만든 대한민국의 첫 돔 경기장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필리핀의 기술 및 자금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낭설이 당시부터 현재까지 공공연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결론지어졌다.
-서울의 남(목멱)산을 대표하는 팔각정-
남산(南山) : 서울시 중구와 용산구에 걸쳐 있는 해발 262m 산이다.
산능선 따라 한양도성을 축성했으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성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랜드마크가 되어 있는 정상의 N서울타워, 케이블카 그리고 지하로는 1·2·3호 터널이 뚫려 있다.
숭례문(崇禮門) : 서울시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서울도성의 성곽문이다.
한양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일명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하는데, 서울 도성의 사대문 가운데 남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가유산청 덕수궁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쯤에 방화로 발생한 화재로 2층 누각의 90%, 1층 누각의 10% 정도가 소실되었다. 이후 2010년 2월에 숭례문복구공사를 시작한 이래 2013년에 완공되어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정동극장(貞洞劇場) : 서울시 중구 정동길 43에 위치하고 있는 공연장이다.
전통예술의 발전과 보급, 생활 속의 문화운동 전개, 청소년 문화의 육성이라는 세 가지 지표를 목적으로199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복원, 역사적 소명으로 건립 탄생한 극장이다. 개관 당시에는 국립극장 분관으로 출발했다가, 1996년 과도기 운영체제인 사단법인체로 변경하였으며, 1997년 재단법인으로 완전한 독립법인체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돈의문(敦義門) :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한다.
'의(義)를 두텁게 하는(敦) 문(門)'이다. '의(義)' 자는 전통적으로 서쪽을 가리켰기 때문에 돈의문 이름 뜻을 '서쪽을 두텁게 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성부에서 평안도 의주부까지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작점이었으며, 강화도로 가는 간선도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외교사절이 오면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고 조선 외교사절이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나라의 중요한 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철도 놓으려고 철거당한 이후, 현재 서울시 종로구 평동 112번지(강북상성병원 입구)에 터만 남아있다.
한양도성 종주하며 경유했던 중요지점들 스케치
강북삼성병원 본관 앞 ‘경교장’에 들렸다가 서울시교육청-홍난파가옥-권율장군집터-범바위-인왕산-창의(자하)문-윤동주시인의언덕-창의문안내소에 이르렀는데 관리직원이 계단에 통제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창의문에서 북악마루까지 출입을 봉쇄하고 있단다. 폭우로 인해 성벽이 붕괴되어 안전문제로 탐방로를 임시 폐쇄한다니 어쩌겠는가? 돌아갈 방법을 물으니 백악마루는 통제중이나 청운대안내소에서 청운대까지는 통행가능하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수고하시란 인사말을 전하고 창의문을 빠져나간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돌고 돌아서 청운대안내소 주차장경유 청운대에 올라서며 벗어났던 한양도성에 복귀했다.(09:17)
성곽붕괴로 통제된 청운대에서 백악산 정상까지 250m, 백악마루는 눈으로만 확인하고 뒤돌아서, 한양도성 따라 곡장-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안내소(안내종료)-와룡공원에 내려선다.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빵과 참외 한쪽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경신고중학교 울타리-혜화문-낙산공원-흥인지문-청계천-동대문운동장-청계천-광희문-장충체육관-반얀트리클럽-남산국립극장-순환버스정류장-N서울타워-팔각정-봉수대-숭례문-정동제일교회-정동극장-아침에 출발했던 돈의문 터(강북삼성병원입구)에 다다랐다.(14:54)
한양도성 종주(18.7km/ 8시간 가까운)를 깔끔하게 마감하며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연결하는 평산성(平山城: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으로, 둘레는 18,127m에 달한다. 1396년(조선 태조 5) 평지는 흙으로, 산지는 돌로 축성시작 2년만인 1398년에 완공하였다. 1422년(세종 4)에 개축하면서 토성구간 모두를 석성으로 바꾸어 쌓았다. 성벽에는 4대문(숙청문,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과 4소문(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덕문)등 8개의 성문이 있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영조 대에 대대적으로 보수· 개축 후에도 수차례 정비했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세종 때에는 구간명·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책임기술자·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소재를 밝혔다. 현재 한양도성 전체길이는 18.6km이나 실제로 진행한 거리는 3km가 늘어난 21.6m다. 원인을 심층 분석한 결과는 아래 4가지다.
①북악산 들머리인 창의문에서 백악마루사이 성벽붕괴사고 때문에 통행불가, 허용구간인 청운대안내소를 찾느라 상당한 진행거리가 늘어났다. ②흥인지문에서 청계천(오산수문)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가 100m쯤 창신동 방향으로 옮겨졌다. ③장충단로 SK주유소까지 발품 팔았고 ④사진 찍으려고 움직였던 거리등을 합산하면 대충 3km 남짓이란 계산이 나왔으니 GPS 측정거리는 정확하다.
장마전신이 제주도 아래로 내려가 서울엔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중에 옅은 물방울이 하늘에 가득하다. 아직은 삼복더위는 아니지만, 서울의 최고 기온은 31도이나 찌뿌듯한 날씨로 인해 높은 습도와 아스팔트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대단했다. 몸에선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물에서 금방 건져낸 듯 등산복이 완전히 젖어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실제로 진행한 거리는 21.6m에 소요시간 7시간57분간(휴식과 식사시간 포함)의 여름산행을 행복한 마음으로 마감,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을 이용해 귀가를 서두른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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