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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는 출입통제구간, 멀리서 잡아본 풍경, 정상 대역에 충실한 매봉-

 

 

청계산(淸溪寺)<시대적 공간을 넘어서 조윤(趙胤), 정여창(鄭汝昌) 대화>

2293024062           2024-10-30()

 

자리한 곳  : 경기도 과천, 의왕, 성남시 수정구, 서울 서초구.

지나온 길  : 대공원역-()-청계사-이수봉-만경갈림길-만경대-혈흡재-매봉-옥녀봉-화물터미널-양재시민의 숲역

거리및시간: 645(11:18~18:03)          도상거리  : 15.7km <보행수(步行數)  : 27,717>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비교적 맑음 <‘해 뜸 06:55,    해 짐 17:36’     ‘최저 11,     최고 21’>

 

게으른 습성 때문에 벼르고 벼려 2주 만에 가까스로 나선 산행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선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혐오스런 행위가 아니라면, 지탄의 대상이거나 성토당할 잘못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또래 친구들은 새벽잠이 없다고 하소연이 보통인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정반대다. 망팔의 나이에도 아침잠이 많아 730분에 일어나기도 조차도 힘겹다. 물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보통은 1시를 넘기기 일쑤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을 때는 4시 기상도 거뜬하나, 바쁠 때는 8시를 넘겨서 늦잠을 즐기고 일어나야 몸이 가벼운 나쁜 습관의 노예가 되었다. 여러 날 벼르고 벼렸지만 새벽기상에 실패했다. 계속해서 산행을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해가 중천에 떠오른 늦은 시각이나 배낭을 꾸려 현관문을 나선다. 손꼽아보니 지난 16() 북한산행 이후 2주 만의 산행이다. 게으른 곰탱이 입장에선 산행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쾌하기만 하다.

-들머리인 대공원역 가로수 단풍, 등산능선에서 마주한 안내판-

 

날은 맑은데, 밤새 날아온 중국발 스모그로 세상이 흐릿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란 대도시는 특이하게도 주변에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청계산, 관악산과 삼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는 아늑한 분지로 풍광이 수려한 명산들이 수두룩하다. 또 도심을 가르는 한강까지 조화를 이루는 자연조건을 함께 충족하고 있는 도시는 찾아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천혜의 자연환경 조건에 힘입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여래개의 산들을 연계해서 이웃동네 마실 가듯이 당일치기 산행을 다녀올 수 있는 매력덩어리 도시다. 지하철 6호선을 이용해 삼각지역에서 4호선(안산행)으로 환승, 대공원역에서 하차, 해우소부터 다녀와서 산행복장을 꾸리고 3번 출구에 올라선다. 가로수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자태를 뽐내건만, 밤사이에 날아온 중국발 스모그가 다량 유입되어 하늘은 뿌옇고 흐릿하다. 오염물질이 오래 머물더라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까지는 오르지 않기를 희망하며 힘차게 산행지로 출발한다.

-응(매)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관악산, 중국발 스모그로 흐릿하다-

 

청계산(淸溪山) : 서울시 남쪽 서초구. 과천시· 의왕시 ·성남시 경계하는 해발 618 m 산이다.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서쪽에 솟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남쪽을 이루고, 주봉인 망경대(望景臺: 618m)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 푸른색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두고 옥녀봉(청룡산)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망경봉은 고려가 망하자 충신이었던 조윤(趙胤 후일 스스로 趙狷으로 개명), 조선건국에 함께 참여해 달라는 태조 이성계의 청을 거절하고 청계산 정상에서 북쪽 고려의 수도인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역사학자·금석학자·서예가·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청계산 옥녀봉 북쪽 자락에 초당을 짓고 노후를 보냈던 유거지가 남아 있다.

-청계산 망경봉 편의상 우회로에서 만난 가을 풍경-

 

지금 산행중인 청계산이란 이름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전국에는 동일란 이름의 산들이 많다. 청계산이라고 부르는 이름의 산도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오늘 산행한 청계산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다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유명하다. 청계산들 중에서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으로 인지도가 높아 시민들이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즐겨 찾은 서울근교 명산으론 이름 높다. 최고봉은 망경대(望景臺), 과천시와 성남시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618m이다. 산경표에 따르자면 백두대간에서 한남정맥(漢南正脈)이 갈라지고 한남정맥에서 다시 관악지맥(冠岳枝脈)이 갈라지는 산줄기로, 청계산은 관악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자갈들을 모아 조성한 거대한 와불상이 자리한 청계사 풍경-

 

청계사(淸溪寺) :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에 있는 조계종 용주사에 소속된 사찰이다. 19839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청계사는 불상에 우담바라꽃이 피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며, 1284(고려 충렬왕 10)에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중창하였고, 이후 그 후손들이 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다. 2000년에 10월에는 영력이 강한 곳에서 핀다는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어 화제가 되었다. 꽃이 피면 영화스럽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난다하여 영서화라 부르기도 하는 청계사의 우담바라는 부처님 눈썹에 모두 21송이가 피었다. 그 모습은 현재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또 조그마한 자갈들을 모아 조성한 거대한 와불상은 청계사의 명물이다. 사찰에는 조선 숙종 때 승려 사인비구에 의해 1701년 제작, 보물로 지정된 의왕 청계사 동종이 있으며, 청계사 목판, 청계사 신중도, 청계사사적기비, 아미타여래설법도,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등 다수의 유물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는 만세루, 설법전, 극락보전, 지장전, 삼성각 등 10여 채의 건물이 있으며 작은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다.

-곱게 물든 붉은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대조적이다-

 

가진 것 없어도 깊이 생각해 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의 나는 초라하고도 쓸모라곤 1도 없이 하잘것없는 뒷방늙은이에 불과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는다. ‘정전협정‘(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19537276·25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중국군, 북한군,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날)이 있던 그해 섣달 하순 가늘게 눈발이 날리던 날 오후 섬마을의 가난한 농가 안방에서 알몸으로 태어났다. 헐벗고 배고픔과 무서운 돌림병도 견뎌냈고,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나의 정체성이란 화두를 어설프게나마 알아냈다. 부모님의 축복아래 직장(하이칼라)에서 30년을 봉직했고, 슬하에 건강한 딸, 아들 남매를 두었다. 아직은 마음만 먹으면 산행을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이며 행복이겠는가? 생각하며 이수봉을 경유해 혈흡재에서 시간을 6~500년 전으로 돌려 고려의 조윤‘, 조선의 정여창선생을 만나 본다.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이수봉 정상석, 혈읍재 안내판-

 

이수봉과 혈흡재에 전해오는 이야기

혈흡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성종 때에 대학자인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겪으면서 이곳 망경대로 오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고 하여 혈흡재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후에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수봉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 번이나 모면한 곳이라 붙진 이름으로 봉은 높지 않지만 남북으로 흐르는 능선을 중심으로 산세가 수려하게 펼쳐져 있다.

-돌문바위에 청계산의 정기를 받고 하산길에 만난 철모르고 핀 꽃-

 

7시간에 가까운 천계산행을 갈무리하며

화물터미널, 서울추모공원 터널입구에서 공식적인 산행이 끝났으나 마음정리가 우선인데 아직도, 마음정리를 끝내지 못했으니 힘들겠지만, 거리상으로 약 1.8km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역(신분당선)까지 걷으며 갈무리하기로 한다. 개성에 따라 조금 아니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상대의 다른 무언가 매력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가도 잊지 못하고 기억의 한켠에 담아 뇌리에 쌓아 두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고, 타인 즉 자신에게만 베풀기보다는 내게 필요한 무엇을 주었거나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을 행한 그리움이기 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노력했지만 역량부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내일도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른다. 따라서 나에겐 내일이란 희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4-10-31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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