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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분위기 때문일까? 쓸쓸하게 다가온 장릉. 발산 정상석-
장릉(莊陵)<영월역-능말도시숲-노루조각공원-엄흥도기념관-영모전-향교>
제2418025106호 2025-11-10(월)
◆자리한 곳 : 강원도 영월군
◆지나온 길 : 영월역-동강대교-군청사거리-보건소-능말도시숲-노루조각공원-장릉-엄흥도기념관-등산로안내소-웰빙산(돌담쉼터)-두목재-발산(지도상)-조망점(정상석)-영모전-향교-영월역
◆거리및시간: 6시간25분(10:13~16:38) ※ 도상거리 : 약14.2km <걸음 수(步行數) : 25,195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맑고 비교적 포근함 <‘해 뜸 07:07’ ’해 짐17:26’ ‘최저 4도, ’최고 11도’>
단풍철이 지났는데도 열차표 예매가 쉽지 않다.
강원도라 입동이 지난 11월 중순이면 단풍의 절정기는 끝났으므로 기차표 예매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5일이나 여유를 갖고 지난 6일(목)에 ‘코레일 톡’으로 11일(화) “청량리->영월” ‘무궁화열차표를 매표’하려 했는데 매진이다. 다시 10일(월) 열차 역시 매진이다. 당첨 확률을 높이려는 욕심에서 같은 열차를 이틀연속(10~11일) 예약 대기자에 등록한다. 종일토록 예약됐다는 소식을 기다렸으나 무소식이다. 연락이 없는데 무작정 기다리고만 일을 수만은 없으니, 내일(7일)은 조선국의 유일한 황릉인 홍릉 답사하고, 백봉산을 연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산행중에 ‘코레일 기차’에서 다음과 같은 톡을 받았다. 회원(회원번호:083****749)님의 예약대기 신청좌석이 배정었습니다. [11/10 무궁화 (#1631)청량리(07:34)->영월 1매] 11/07 24;00까지 결제바랍니다.(미결제시 취소) 코레일 톡 “예약 승차권 조회. 취소”에서 배정된 승차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왔으니 즐거운 마음에 즉석에서 코레일 톡으로 결재하고, 상경열차표까지 예매했다.

-영월역에서 장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횡단해야 하는 동강대교-
동강(東江)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동편에서 유입되기에 붙여진 명칭이며 조양강(朝陽江)과 오대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영월 서강(西江)에 합쳐지는 지점(영월 합수거리)까지의 강으로, 법정하천명 한강 본류의 일부이다. 길이는 65km이다. 1990년 영월군에 발생한 대홍수로 정부에서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동강댐 건설을 추진하였으나, 환경단체와 국민들의 반대로 2000년 건설이 백지화되자, 환경부에서는 이 일대를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영월보건소에서 나무 계단 따라 능말도시숲 산책로에 들어선다-
능말도시숲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숲. 어르신들의 편안한 쉼터와 청소년체험학습장 등 다양한 기능을 두루 갖춘 숲으로 2014년에 준공되었으며, 잔디 마당, 오감 체험 학습장, 해찬솔 길, 자작나무 길, 참나무 산책 길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신과 노루의 전설을 승화시켜 조성한 공원이 현재 장릉이란다.-
노루조각공원(노루彫刻公園) : 영월군이 장릉에 얽힌 여러 전설을 활용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세조에 의하여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복위 운동에 얽혀 죽임을 당한 후,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당시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가 유일하게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는데, 엄흥도와 관련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눈 덮인 산을 오르며 묻을 만한 곳을 찾았다.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달아난 자리가 눈이 녹아 있어 잠시 그 자리에서 쉬었는데, 일어나려 하여도 지게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 시신을 매장하였는데, 바로 현재의 장릉이다.



-어린 단종 비애와 충절 이야기가 전설로 재탄생해 돌아온 장릉-
장릉(莊陵)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이다. 이전에는 노산군 묘로 불렸다가 숙종 때 능 지위로 승격되었다. 별칭은 노릉(魯陵)이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여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에 사약으로 승하하셨다. 후환이 두려워 거두지 못한 시신은 강물에 떠다녔다.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암매장하였다. 이에 따라 장릉은 추존왕릉을 제외하고,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 경국대전” 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폐위된 임금의 공식 명칭은 노산군 묘였으나 민간에서는 노릉(魯陵)이라 불렀다. 동국문헌명신편에는 노릉으로 기록되었고, 윤순거(尹舜擧)가 편찬한 책의 이름은 노릉지(魯陵誌)2권이라 명명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릉 근처에 있던 영월 보덕사는 노릉사(魯陵寺)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 석물을 세운 후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1970년 5월 26일 국가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화재로 충의공 엄흥도 기념관은 없어지고 비석만 남아 있다-
엄흥도기념관(嚴興道 記念館 ) :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嚴興道)가 어머니를 위하여 마련하였던 관을 가져다 영월군 북쪽 5리에 있는 동을지(冬乙旨)에 매장하였다. 이후에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여러 조치가 행하여졌는데, 현종 때 엄흥도의 자손을 찾아 등용하고, 숙종 때 공조참의, 순조 때 공조판서에 증직(贈職)하였으며, 고종 때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조 때 정려(旌閭)를 내리고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하였다. 안타깝게도 21년 화재로 전소되어 기념관은 창을 수 없다.


-사실상 영월군의 진산인 발산 정상석에서 조망이 환상적이다-
발산(鉢山)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자리한 영월의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해발 675m의 산이다. 조선시대 영월군의 읍치(邑治)[군수의 사무실이 있던 곳]가 있었는데, 발산은 바로 영흥리의 북쪽에 있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영월의 진산은 발산’이라는 내용이 있다. 발산의 남쪽 자락에는 단종의 묘소인 장릉이 있고, 보덕사라는 불교 사찰이 있다. 발산은 산의 모양이 바리때 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8년 간행된 50,000분의 1 지도에는 ‘바리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바리산은 발산의 순우리말이다. 전국적으로 발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은 매우 많다. 근래에 발산은 ‘바리산’보다는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영월읍에서 북쪽 방향으로 올려다보면 산의 모양이 삼각형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산은 아니나 영월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장릉, 영모전, 보덕사, 금몽암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정상의 조망이 매우 뛰어나 동강과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등산코스는 영월고등학교에서 영모전을 거쳐 바위 구간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하산은 북쪽의 주능선으로 가다가 서쪽의 가파른 길을 내려가서 금몽암 입구를 지나 보덕사를 경유하는 코스이다. 금몽암으로 올라가서 구경할 수도 있다. 최근 외지에서 오는 등반객들은 발산에만 오르지 않고, 주변의 봉래산과 시루산을 연계하여 좀 더 긴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영월의 중심지 영흥리는 현재 국도 제31호선과 국도 제38호선이 지나가는데, 과거에는 국도 이외에 현재 봉래산로도 중요한 도로였다. 발산을 중심으로 영월을 지나는 3개의 중요한 도로인 셈이다. 발산과 봉래산 사이로 난 봉래산로는 분덕치(分德峙)를 넘어 마차리를 지나 율치(栗峙)[밤고개]를 거쳐 평창으로 가는 길이었다.


-단종의 영정을 모신 영모전, 매년 10월 24일(음력) 제사 올린다-
영모전(永慕殿)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재위 1452∼1455)의 영정(초상화)을 모신 곳이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자 모두가 애도하며, 정성 어린 마음으로 중종 12년(1517)에 사당을 짓고 항상 단종이 있는 것처럼 공경하였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가운데 칸의 뒷부분에 초상을 모셔둔 방을 두고 그 양 측면과 뒷면은 벽을 설치하였으며, 앞면은 장지문을 달아 밝게 처리하였다. 그 외의 부분에는 마루를 놓았는데 앞면 3칸은 모두 문 없이 개방되어 있고, 뒷면과 옆면은 벽에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살창을 설치하였다. 내부 중앙에 모셔져 있는 영정에는 충신 추익한이 백마를 탄 단종께 산포도를 드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1977년 11월 28일 강원도의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매년 음력 10월 24일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무궁화 도착 산행 들머리 했고, 원점회귀해서 날 머리한 영월역-
영월 장릉 재 답사를 실행했고 자신과의 약속도 지켜냈다.
다녀온 오래되어 기억조차 희미한 영월 장릉 여러 차례 벼르고 벼르다 다녀오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단풍 절정기라 보름쯤 기다렸다. 절정기가 조금 비켜섰더라고 아직은 단풍철 끝자락이라 빈자리는 없다. 그렇다고 혼잡하지도 않고 차분한 분위기의 동해가는 무궁화 열차는 청량리역을 출발해서 2시간30분만에 영월역에 도착했다. 계획한 코스<영월역-동강대교-군청사거리-영월군보건소-산책로-능말도시숲-노루조각공원-영월장릉-엄흥도기념관-등산로안내소-웰빙산(돌담쉼터)-두목재-발산(지도상)-조망점(정상석)-영월역=13.4km//소요예상 6시간>이 원안이었다. 산행이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러 기차역까지 30분이면 가능한데, 2시간이나 남았으니 1시간 30분의 잉여시간을 소화해야 했다. 단종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영모전’과 충절사(영월 출신 단종의 3충신 엄흥도, 정사종, 추익한을 기리기 위하여 1997년 건립한 사당)을 돌아보고 영월향교까지 천천히 돌아본다. 영월대교를 건너 영월역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열차시간이 50분이 남아 있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보다는 다슬기맛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싶었지만 돈 내고 혼자라고 푸대접이라도 받지나 않을까? 노파심 때문에 마음을 비운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씻고 배낭에 남아 있던 과일과 과자부스러기로 무료함을 달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서울시내도, 인접한 인천이나 경기도가 아닌 첩첩산중의 대명사 강원도 영월, 단종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두메산골이 분명하다. 아침에 집을 나서 대중교통편으로 영월장릉과 엄흥도기념관을 답사하고, 발산연계산행까지 깔끔하게 산행하고, 여유롭게 당일 초저녁에 귀가했으니 말이다. 조선왕릉 답사를 완료했지만 찜찜해서 재 답사를 다짐했던 영월장릉 숙제도 완성해고 자신과의 약속도 지켜내 홀가분하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5-11-13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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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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