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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 북성산 1등 삼각점(259.7m)-

 

 

영 녕릉(英寧陵) 세종, 효종릉 & 북성산을 헤매느라 진이 빠졌다.

2388025076호          2025-08-16()

 

자리한 곳  : 경기도 여주시.

지나온 길  : 세종대왕릉역-번도4-여강길-영릉매표소-세종대왕동상-영릉(英陵)-영릉(寧陵)-주차장-여주하동사거리-종합운동장-월송육교-여주농고산림욕장-북성산(259.7m)-세종대왕릉역

거리및시간: 7시간57(10:40~18:37)          도상거리 : 23.4km <걸음 수 : 36,580>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구름 많음 오후 해 <‘해 뜸 05:49’     ’해 짐19:23’     ‘최저 24’     ‘최고 31’>

 

계곡산행을 생각했으나 영 녕릉과 북성산을 선택했다.

어제 공주산행에서 마음고생이 심했고 하산주가 과했던 탓으로 몸이 찌뿌듯하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에도 몸이 풀리지 않아 한동안 앉아서 멍 때리다. 컴퓨터를 켜서 기상청 날씨부터 확인하니 전국곳곳에 폭염 주의보(기상청의 폭염주의보 기준으로 하루 최고 체감온도 33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되고,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이나 폭염 장기화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에 발령)가 내려진 더운 날씨다3일 동안의 산행계획이 실제 당일치기로 끝나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웠고 날씨마저도 나쁘지 않은데 집에서 빈둥거리는 그림자체가 불만이다. 그래서 북한산의 계곡산행을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꿔 근래에 시작한 조선왕릉 미답지인 여주의 영녕릉에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지도를 펼쳐들었다. 세종대왕릉역-영-여주역까지 트레킹 코스가 완성됐으나 썩 내키지 않았다. 세종대왕릉역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도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느껴졌다. 그래서 북성산을 포함해서 코스를 그려보니 도상거리 약 17km로 원점회귀(세종대왕릉역-세종대왕릉-효종대왕릉-영릉주차장-월송사거리-월송1리마을회관-북성산-세종대왕릉역)코스가 완성됐다. 다녀올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서둘러 배낭을 꾸려 현관문을 나선다.(08:00)

-세계유산 조선왕릉 세종대왕릉 & 효종대왕릉 안내도-

 

영 녕릉(英寧陵) :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사적 제195호로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에 있다.

-영릉(세종대왕, 소헌왕후) 조선 왕조 역사상 최초의 합장 묘역- 

 

영릉(英陵) :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은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영릉의 지세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한다. 거기에다 정남향 이어서 가히 만세에 나라를 이어갈 만한 기가 탄생할 자리인데, 이를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이라한다.

영릉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재실과 세종대왕 동상이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세종대왕기념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성역화사업으로 주변정비를 실시하였다. 훈민문을 지나 너른 능역을 조금 걸으면 연못과 홍살문, 정자각이 차례로 다가선다. 언덕에 올라서면 석상, 석마, 문인석, 무인석을 앞에 둔 합장릉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조선 왕조 500년사의 가장 뛰어난 임금인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이다. 당초에는 광주 대모산에 있던 것을 예종(1469)때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이능을 천장후 조선조가 100년 연장되었다는 가백년설이 전해지고 있다.

-왕의숲길 경계로 조선 유일한 북벌론 주장한 효종대왕 영릉-

 

영릉(寧陵) :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효종은 대동법을 실시해 백성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동원상하릉으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의 무덤인 의릉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고, 돌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돌에 문자를 새겼다. 즉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선릉 때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지만, 영릉에서 다시 사라졌다. 무덤 앞에는 상석·문인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다.

 

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포함한 조선왕릉(왕릉 40, 13기 등 총 53)2009626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두 분의 조선국왕께서 영면하신 英寧陵 답사를 서두른 까닭은?

자택(은평구)에서 여주까지는 시쳇말로 200(응암역-세종대왕릉역: 87.7km)가 넘는 먼 거리로,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1시간 30,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시간가까이 소요된다. 무더위와 장거리에도 굴하지 않고 달려온 까닭은 조선 국왕 27분 중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두 분의 군주가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한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견 없이 선택할 세종(4)대왕님 : 다양한 업적들을 열거하기 어렵도록 많지만 으뜸은 훈민정음 창제’ ‘과학, 농업기술발전시킨 애민정신의 성군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른 한분은 효종(17)대왕님 : 조선 국왕 최초로 국격(國格)을 높이고 국력신장을 위해 북벌론’을 주장하셨다. 안타깝게도 짧은 재임기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엔 이상(理想)이었다 하더라도 자주독립국가로 국민의식과 군사무기 재정비를 이루셔서 나라를 나라답게 통치하셨던 군주의 덕목을 갖추신 분이다. 이렇게 훌륭한 두 분께서 영면하신 성스런 곳인데 답사가 늦어져 진정으로 송구한 미음이 앞선다. 오늘부로 조선왕릉 답사지 9개 지역 미답사지 9개 지역이므로 절반을 답사했다.

-시행착오 끝에 찾은 산림욕장, 북성산 1등 삼각점, 신지1리 입구-  

 

북성산(北城山) : 경기도 여주시 월송리와 능서면 신지리 사이에 있는 고도 259.7m의 산이다.

북쪽에 성이 있는 산이어서 북성산이라 부른 유래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건치 연혁에 "예종 원년(1469)에 영릉을 부의 북성산 기슭으로 옮기고 천령현을 혁파하여 부에 소속시키고 지금 이름으로 고쳐 목으로 승격시켰다."고 하고, 산천조에 "북성산은 주 서쪽 7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옛 성터가 있다."라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는 "주 서쪽 7리에 있는데 옛날 성터가 있다. 지금은 두 능(英陵, 寧陵)의 주산이 되었다."고 하여 북성산이 여주의 진산(鎭山)이자 두 왕릉의 풍수상 주산(主山)임을 명기하고 있다. 더불어 옛날 성터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성이란 이름이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북성산을 주맥으로 자리 잡은 왕릉의 풍수상 명당 국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전후좌우를 감싸주는 사신사(四神砂)를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도상에 '영릉주산회룡고주(英陵主山回龍顧主)'라 하여 명당 국면을 감싸 안는 산세가 다시 주산을 되돌아보는 풍수상 길국의 형세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주의 영-녕릉과 북성산행을 마감하며

여주시는 얼마 전까지도 군이었다. 지난 2013923일자로,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가장 최근에 탄생한 인구114,500명의 도농복합. 남한강 연안에 넓은 평야가 발달해 쌀을 비롯해서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며, 흔암리의 선사주거지를 비롯해 역사 유물이 많다. 신륵사 주변으로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오늘은 도상으론 약17km에 불과한 거리다 그러나 세종대왕릉역에서 영릉 이곳저곳을 돌아보다보니 자연스럽게 3km쯤이 늘었다. 그리고 영릉주차장-하동사거리에서 코스를 변경해서-여주종합운동장-농도원2-월송육교-경강선육교넘어 월송동방향으로 가다가 여의치 않아 되돌아 나와 경강선 북성산터널 지나서 여주농고산림욕장에서 가까스로 등산에 진입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철봉, 평행봉, 돌탑)에서 1등삼각점(259.7m)봉에 도착했는데 정상이 아니라 하산길이다. 어쩔 수 없이 험로를 마다않고 약수터방향(15:23~16:47)까지 1시간 20분 남짓을 투자해서 2번이나 왕복하느라 2km 오르내렸으나 결국 북성산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찾지 못했는데 전신은 땀과 잔가지 오물들로 처절한 몰골이다. 삼각점에서 좌측(번도마을)로 탈출하려 했는데 잡목이 심해서 조금 덜한 우측(왕대마을)로 내려섰다. 고추밭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전철역을 물었는데 답이 명쾌했다. 여주역과 세종대왕릉역 여기선 중간쯤이다. 걸어가기엔 소로와 한산한 길로 연결된 세종대왕릉역을 권했다. 여주장례식장 정류장에서 갓길로 600m쯤 역진행해 구릉교차에서 좌측(북성산로)길 따라 신지리 회전교차로 지나면서, 독도를 게을리 한 벌(罰)1.3.km 씩이나 멀리 돌아서 세종대왕릉역으로 원점회귀하느라 시간상으론 8시간 가까이, 거리는 23.4km의 트레킹으로 늘어지고 구겨진 육신으로 마감한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5-08-2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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